사실 최근에 읽은 오스터 아저씨의 책은 <고독의 발명> (1982) 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최근 작품을 읽고 난 뒤에 가장 초기작을 구해서 읽게 되었다. 이제 국내에 출간된 오스터 아저씨의 책 중에 소장하지 않은 책은 <스퀴즈 플레이>, <소멸>, <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의 삶>, <뉴욕통신>,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인 줄 알았다>, <왜 쓰는가?>, <빨간 공책> 뿐이다. 이 중 대부분은 소설도 아니고 워낙 이 아저씨 책이 이름에 비해 잘 안 팔리는 책이라 이미 절판된 책은 언제 또 구해서 읽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앞에 적어 놓은 7권을 빼고는 나머지 책들은 모두 구해서 읽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겠다.
오스터 아저씨의 책을 줄곧 읽어온 사람들은 어쩌면 <겨울일기>가 낯선 책은 아니다. <브룩클린 풍자극>에서 나온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기를 출판하는 사업을 꿈꾸는 주인공처럼, 오스터는 항상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고독의 발명>이 그렇게 그의 아버지에 대한 소회였다면, <겨울일기>는 이제 삶의 '어떤' 지점에 이른 자신에 대한 묵묵한 소회이다. 자신을 읽고 바라보는 자신에 관한 연대기. 이전 <뉴욕 3부작>이 자신의 반물질과 만나 쌍소멸되는 과정을 그린 책이었다면, <고독의 발명>, <빵굽는 타자기>에서 <겨울일기>로 이어지는 세권의 책은 그렇게 그가 줄곧 이야기하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 관한 연대기이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아닌, 오스터 아저씨 자신이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자신을 '당신'으로 바라보는 화법에서 오는 자아를 바라보는 동질감과 이질감이다.
지금 누군가 오스터의 책을 읽고 싶어하고, 처음 읽을 만한 책을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이 <겨울일기>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에게 자신이 살아온 길을 반추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본능이고, 결국 우리가 눈을 감는 순간 종국에 남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숱한 순간들의 파편일테니까.
하지만 누가 알까? 그의 이야기처럼 '눈먼 죽음'이 우리 모두를 찾아 오는 순간이, 누가 먼저 인지를. 그저 난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들을 즐기고, 내일이 오면 그의 부고를 맞딱들일 순간이 먼저 올지, 아니면 내 죽음이 먼저 나를 찾는 순간이 먼저 올지를.
동행 (Timbuktu, 2000), 폴 오스터
- "리처드 3세" 중..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 하비에르 마리아스
2년전, 내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자조하던 그때에,
나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어대기 시작했었다. 그건 오기에 가까운 것이었음에도, 그런 습관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에서 끝나는 소설이었다. 추리소설과 같이 시작해서, 닫히지 않은 결말로 끝났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배경이다. 어둡고, 비가 막 내린 직후의 빈거리, 가로등 불빛이 막 내린 빗물에 비친 그런 곳. 뜬금없는 제목과 이 소설의 의식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읽는내내 몇 번이고 덮어버릴 생각을 가지고 행간을 쓸어갔지만, 그 제목만은 정말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