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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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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Timbuktu, 2000), 폴 오스터





아마 책을 사오면서 표지의 부연 서술을 읽지 않았다면, 첫 장에서 이 소설의 두 존재의 개체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 심어 놓은 장치에 꼼빡 넘어갔을 것이다. 미스터 본즈라는 이름도 그렇고, 오히려 인간 주인공인 윌리라는 이름이 어떻게 보면 개의 이름과 더 비슷하니까.

아마 대부분 내가 읽은 폴 오스터의 소설이 그렇듯이 나는 먼저 이 소설에서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아내고 싶다.

꿈, 병원, 우연, 광기

어떻게 보면 미스터 본즈에 대한 서술은 정말 오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개의 한계와 인간으로 덧칠된 개의 한계, 이걸 뭐라고 해야되나, 책 표지 뒤에는 <인간으로 왜곡된 개>라고 하지만, 실제로 왜곡 되었다기 보다는 본즈는 딱 의도한 만큼의 인간성과 개의 본능 안에서만 표현되고 또 그 안에서 딱 개 만큼의 행동 이상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문제는 본즈가 거쳐가는 두 가족, 윌리의 가족과 딕과 폴리의 가족이다. 본즈는 폴란드 이민 가족, 그리고 그 2세인 윌리를 거쳐서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의 스트레오타입이라고 볼 수 있는 딕과 폴리의 가족을 거쳐가는 묘사와 본즈가 꾸는 꿈이 현실과 교차되고 그 교차된 꿈이 죽음을 서술해 나간다.

많은 부분이 오스터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로 점철되어 있다. 윌리가 쏟아내는 야구 이야기, 불운과 우연의 점철된 사건들의 연속, 그리고 어디로 튀어 나길지 모르는 화자들의 운명. 그럼에도 이 소설이 빛나는 이유는, 본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세계와 죽음에 대한 관찰이 굉장히 날카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난 왜 소설의 제목이 '동행' 인지 모르겠다. 실제로 본즈는 그 누구와도 '동행' 하지 않는다. 차라리 우연의 연속, 혹은 '우연의 음악' 속에서 '팀벅투'를 향해 끝 없이 내달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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